왼쪽부터 태성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박통합과정 연구원(공동 1저자), 가브리엘라 파샤 이리안티(Gabriella Pasya Irianti) DGIST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 연구원(공동 1저자), 김예찬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박사(공동 1저자),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공동 교신저자), 허수미 DGIST 에너지공학과 교수(공동 교신저자), 김소연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공동 교신저자)
서울--(뉴스와이어)--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화학생물공학부 김소연 교수 연구팀이 DGIST 에너지공학과 허수미 교수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권석준 교수팀과 공동으로 금속 전구체가 침투한 블록공중합체(block copolymer, BCP)* 박막을 활용해 나노패턴 배열의 ‘무질서도’를 정밀하게 설계·제어하는 방법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 블록공중합체 : 서로 다른 종류의 고분자 사슬들이 화학적으로 묶여 블록 형태로 이뤄진 고분자
이 무질서 나노패턴 제작 기술은 그동안 제어가 어려웠던 나노 스케일의 무질서 구조를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는 혁신적 접근법을 제시함으로써 나노광학·나노소자 설계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올해 4월 국제 저명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특히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최근 실린 재료과학 및 화학 분야 논문 가운데 우수 연구를 편집진이 엄선해 소개하는 큐레이션 ‘Editors’ Highlights - Materials science and chemistry’에 선정돼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연구 배경
질서정연한(ordered) 구조에서는 파동이 멀리 전파되지만, 무질서한(disordered) 구조에서는 반복 산란 때문에 파동이 특정 영역에 머무르는 국소화(localization)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렇듯 무질서 구조는 빛·소리·열 등 다양한 파동의 국소화 현상을 유도하는 특수한 기능을 지닌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나노 스케일에서 무질서 구조를 안정적으로 제작하고, 무질서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제어하는 데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특히 기존의 BCP 연구는 규칙적으로 정렬된 나노패턴의 구현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무질서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한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또한 ‘무질서도’를 단일 지표로 정의하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무질서 구조의 재현성 확보와 정량적 제어는 해결되지 않은 난제였다.
이러한 제한은 무질서 구조가 실제 산업 공정과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상용화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무질서 구조는 특정 파동을 제어하는 기능 덕분에 빛의 산란을 제어하는 디스플레이, 고감도 센서, 에너지 변환 소자, 광학 보안 기술 등에 활용될 잠재력이 주목받았지만, 동일한 구조를 안정적으로 반복 제작하기 어려워 성능 편차가 발생할 위험이 있고 대면적 공정 적용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량화와 공정 재현성 확보가 무질서 구조 상용화의 선결 과제였다.
연구 성과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선 공동 연구팀은 블록공중합체와 금속 침투 시스템을 이용해 나노 패턴 구조의 무질서도를 정밀하게 설계, 제어하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먼저 BCP 박막을 이용해 센티미터 크기의 균일하게 정렬된 나노 구조를 만들었다. 이어 금(Au) 전구체를 도입한 뒤 열처리 조건을 변화시켜 규칙적으로 정렬된 구조가 점차 무질서한 상태로 전이되는 과정을 구현했다. 이후 액체질소 급냉 기술을 활용해 각 단계의 구조를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무질서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무질서도를 하나의 기준으로 정의하는 대신 입자의 위치적·배향적 구조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무질서도를 정량화하는 프레임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무질서 구조가 단순히 ‘질서가 무너진 상태’가 아니라 위치 변화와 배향 변화 등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여러 단계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울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무질서 구조가 형성되는 원리를 규명하는 성과도 거뒀다. 연구팀에 따르면 열처리 과정에서 구조가 변화하는 동안 금속과 고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분자의 움직임을 제한하며, 이는 형성된 무질서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또한 금(Au)과 백금(Pt)의 침투 비율을 조절하면 무질서의 정도를 폭넓고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규칙적인 결정 구조부터 액체와 유사한 무질서 구조까지 다양한 형태를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다.
나아가 연구팀은 이렇게 구현한 구조의 기능성을 이론적으로 분석한 결과, 무질서의 형태에 따라 열과 진동 에너지의 전달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즉, 단순히 무질서 구조를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하는 물성을 갖는 기능성 소재를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기대 효과
이번에 개발된 고재현성 무질서 나노패턴 제작 기술은 적은 공정 편차와 제품의 안정적 성능이 요구되는 산업 분야에서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정밀 광센서, 초박형 광학소자, 열 관리 기능을 갖춘 나노구조 등으로 그 응용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기존에는 규칙적으로 배열된 구조를 중심으로 소자를 설계해왔지만, 이번에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로 무질서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면 이를 통해 빛과 열의 전파 방식을 보다 유연하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술은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더욱 효과적으로 제어해 발열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더 얇고 가벼운 디스플레이 및 광학소자, 더욱 선명한 화면 표현, 한결 안정적인 통신 환경을 위한 부품 기술로도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연구에서 확인한 무질서 초균일(hyperuniform) 구조의 특성은 이번 연구 성과가 특정 파장대의 빛을 선택적으로 제어하는 차세대 광소재 개발에 필요한 기반 기술 후보가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진 의견
김소연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무질서를 결함이 아닌 ‘설계 요소’로 삼는 역발상 연구”라고 강조하며 “블록공중합체의 자기조립 특성과 금속 침투 공정을 결합해 나노 스케일 무질서 구조를 재현 가능하도록 제작하는 데 성공했고, 앞으로 이 기술이 파동 조절 소자 개발의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아울러 “향후 연구 분야를 다양한 금속·고분자 시스템으로 확장해 기능성 무질서 나노 소재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연구진 진로
태성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박통합과정 연구원은 현재 벨기에 IMEC(Interuniversity Microelectronics Centre, 아이멕) 연구소에서 파견 근무 중이다. 복귀 후 무질서 나노구조의 정밀 제어 및 기능성 구현을 위한 실험적 후속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연구는 삼성리서치펀딩과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프로젝트명/번호: 강상관 위상 결함 함유 나노 유기 격자 구현 및 이의 포논 국소화 제어 소재로의 활용, SRFC-MA2201-02).
※ 참고 자료
- 논문명/저널: Quantitative control of orientational and positional disorder in nanopatterned arrays of metal-infiltrated block copolymers, Nature Communications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2360-5
- Editors’ Highlights - Materials science and chemistry 웹페이지: www.nature.com/collections/eecgdgijhh